병자호란(1636년) - 청나라의 침략

2020. 9. 13. 13:54역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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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자호란은 1636년에 발발한 조선의 큰 전쟁중 하나며 임진왜란과 더불에 조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전쟁입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최대 치욕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병자호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동아시아 정세



당시 17세기 동아시아에선 국제정세가 급격히 변해가고 있었는데


중원을 호령하던 명나라가 기울어져가고 있으며 만주지역에 여진족이 세운 후금이 강성해지면서


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진을 통합한 누르하치가 명나라에 7가지원한을 하늘에 고하며 명나라에 선전포고를 하게 되고


1616년에 명청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승승장구하여 만주 지역을 전부 먹고 명나라를 속속 물리쳐서


병자호란 발발한 해인 1636년에 명나라는 불과 멸망을 8년을 앞두고 있던 바람앞에 등불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그런 상황에서도 재초지은이라며 명나라를 계속 부모의나라로 여기고 의리를 지켜야한다며


당시 조선 집권당이었던 서인과 인조는 끝까지 친명배금을 펼쳤습니다.


계속 친명배금을 펼치자 열받은 당시 청 태종 홍타이지가 조선을 침략하니


이게 병자년에 일어난 병자호란(1636년)입니다.


병자호란 진행 과정



1636년 12월 28일 청태종이 이끄는 군대 약 10만이 조선에 들어왔고 백마산성에서 청나라 군대의 진로를


차단할 만반의 준비를 하였으나 청군은 백마산성등 모든 산성을 우회하며 무시한채 한성을 향해 신속히 진격했고


기마대답게 매우 빠른 속도로 진격해 1월 9일 개성을 통과해버렸고 1월 10일 한성이 함락당해버립니다.


인조는 1월 9일날 청이 개성을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강화도로 피난가려했으나


이미 정묘호란떄 조선의 전략을 파악한 청은 곧바로 강화도로 가는길을 차단해버립니다.


이에 따라 인조는 어쩔수없이 남한산성에 들어가게 되고 40일간 항쟁을 하게 됩니다.


이때 전국 각지에서 남한선성으로 8도의 근왕병이 몰려들어왔으나 청군에 비해 훈련도나 전력이


매우 낮았던터라 청군에 의해 쉽게 각개격파당했습니다.


결국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항복합니다.


조선의 패배




인조는 결국 남한산성에서 나와서 항복의식 삼궤고두례를 행하는 한국사중 치욕스러운 역사로 남은


삼전도의 굴욕을 당합니다.


이 이후 형제관계였던  조선-청은 결국 군신관계로 사실상 청의 속국이 되버렸고


이건 근대에까지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조선인 60만명이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왜 패배했는가


병자호란의 패배 요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열거해보자면


일단 군사력이 청나라에게 상대가 안됐습니다. 


청나라는 여진족이 세운 나라로 척박한 땅에서 일생 말타고 활쏘고 다니는 애들이라


피지컬에서부터 상대가 안됐고


거기에 조선 군사력이 정말 답이 없어서


조선초기떄는 강력했던 조선이었지만 그이후 세조의 총통 폐지등과 200년간의 평화로


약해질떄로 약해진 조선군이었기에 청나라 군사력에게 상당히 밀렸기에 상대가 안됐습니다.


또한 병자호란 13년전 북방방어를 담당하던 이괄이 북방 정예병 13000명을 이끌고 난을 일으키는 바람에


북방이 텅 비어버렸고 이를 알고 있던 청나라는 신속히 내려올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 이괄의 난만 있지않고 정예병이 그대로만 있었어도


인조가 강화도에 피신할수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인조가 강화도로 가지못하고 남한산성에 갇힌게 또 패배요인이 되었습니다.


조선군은 대대로 큰장점이 산성의 수성전이었는데 


인조가 남한산성에 갇히니 이를 구하기위해 산성 방어를 버리고 되려 공격해야하는 포지션이 되었기에


여러 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만약 인조가 강화도에 피신만했어도 조선정부는 수군의 보호받는 상황에서 전국에서 물자를 보급받을수있고


왕실이 안전하기에 전국에 있는 조선군이 각자 유기적인 작전을 펼칠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하기에 삼전도의 굴요과 더불에 그이후 청나라 속국이 되어버리는


큰 패배를 맛보게 됩니다.


거기에 지휘관의 무능 역시 크게 작용했습니다.


당장 김경징,김자점이 도망가지 않고 제역할만 제대로 했어도


인조가 강화도에 피난가지 못했던 일도 


후에 강화도가 함락되어 봉림대군등 왕족이 잡히는 일이 


없게 되어 어떻게 될지도 몰랐으나


당시 매우 무능한 지휘관들 덕분에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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