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정종의 3가지 업적

2022. 3. 18. 20:03역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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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정종은 고려 제 3대 국왕으로 광종에 가려져서 그렇지 광종처럼

 

대숙청을 감행한 피의 군주였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오래산 광종과는 다르게 4년만에 요절한 군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짧은 삶을 산 정종의 정치가 어떠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정종은 태조 왕건의 셋째 아들로 923년에 태어났으며 휘는 요라 불렀습니다.

 

정종은 시작부터 든든한 배후 기반으로 강력하게 왕권을 행사할 수 있었는데

 

이는 당대 강력한 호족이었던 충주호족 유긍달의 딸인 신명순성왕후의 소생이었으며

 

처가도 후백제의 왕실로서 박영규와 견훤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두 딸이 문성왕후,문공왕후였습니다.

 

이처럼 양쪽 모두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지지기반으로 2대 왕인 혜종과는 다르게

 

시작부터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조선의 숙종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상황속에서 그는 아주 담대히 호족숙청을 해나갈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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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혈 통치 

 

정종은 이러한 강력한 지지기반으로 호족들의 대숙청을 이어나갑니다.

 

즉위후 바로 왕규 일파를 제거했으며 그외에 자신의 정적들은 그냥 제거해나갑니다.

 

왕규일파를 제거해나가는 과정에서 심하다싶을 정도로 사람들을 죽여댔으며

 

이떄 이에 연류되어 죽은자만 300명이나 됩니다.

 

2. 서경천도 시도

 

정종은 이러한 피의 숙청과정에서 민심이 악화되고 특히 개성의 민심이 많이 악화가 됩니다.

 

이에 정종은 아예 수도를 개경에서 서경으로 옮길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서경에 궁궐을 짓는 공사를 시행했고 이에 서경백성들조차 민심이 악화됩니다.

 

그리고 이는 광종이 사망하기 직전까지 이루어졌으며 끝내 정종이 사망하는바람에 무산되게 됩니다.

 

3. 광군 편성

 

당시에 최광윤이라는 사람이 유학을 갔다가 거란에게 잡히게 되는데 여기서 벼슬을 해 일을 하다가

 

최광윤은 거란이 고려를 침공하리라는걸 알아차리고 정종에게 편지를 보내 이를 알립니다.

 

이를 받고는 정종은 즉시 광군사를 설치해 30만 광군을 편성해 대비하도록 합니다.

 

다만 이 광군의 질이 매우 떨어졌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흔한 군대가 아닌 농민들로 이루어진 

 

전투부대가 아니라 육체노동을 하는 노동부대였습니다.

 

즉 이들의 질은 병농을 함께하는 부병의 수준도 못될정도로 처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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