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수양대군 - 계유정난 과정

2022. 3. 19. 23:47역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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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은 1417년에 세종의 차남으로 태어납니다.

 

세조는 정난을 일으키기전에는 대군으로 지냈는데 

 

이후 세종이 승하하고 문종이 2년만에 사망하면서 

 

드디어 어린 단종이 즉위하면서

 

서서히 피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계유정난

 

먼저 단종은 당시 즉위할떄 매우매우 불안정하게 출발했습니다.

 

왕이었던 문종이 39세에 단 2년만에 세상을 떠나버리고

 

거기에 수렴청점을 맡아줄 왕후자체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단종의 나이가 12세에 즉위하다보니 정말 왕권이 흔들릴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문종은 세상을 떠나기전 우의정 김종서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를 불러

 

단종을 잘 보좌해줄것을 부탁해 이들을 고명대신이라 부릅니다.

 

결국 문종이 죽고 단종초기에는 이들이 권력을 차지하기에 이릅니다.

 

황표정사라 하여 당시 인사를 임용할때 이 고명대신들이 이름위에 점을 찍어두면

 

단종이 이들을 임명하는 식의 정치를 했다하니 당시에 얼마나 이들의 권한이 쎘는지 보여줍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세종의 아들들중에 세력이 강성한 자들이 있었으니 

 

둘째아들인 수양대군과 셋째아들인 안평대군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사실상 왕실은 이둘에게 양분되어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지금 고명대신을 필두로한 의정부의 힘이 강하였지만 태종이 숙청을 통해서 이룩한 

 

왕실의 권위는 여전히 강력했기에 젋은 신하들뿐아니라 이들의 불만도 되게 높아집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고명대신들은 이들의 존재가 자칫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는지

 

경계를 할며 일단 가장 주의해야할 인물을 수양대군으로 놓습니다.

 

그리고 이를위해 셋쨰인 안평대군과 손을 잡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수양대군은 한명회같은 책사의 조언을 받아

 

이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위해 명나라로 사신을 가게 되고

 

그이후 귀국후에 드디어 쿠데타 준비를 하게 됩니다.

 

먼저 조정에 반대파들을 숙청하기위한 계획을 세우는데 여기서 나오는것이

 

바로 한명회의 살생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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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0월 10일 수양대군을 병사들을 이끌고 경복궁을 점령하라고 명령한후 자신은

 

관복의 옷을 입고 김종서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김종서에게 편지를 건네고 달빛에 편지를 보려는순간 철퇴로 그를 내리쳤고

 

주위 사람들들 칼로 내리쳐 정변의 시작을 알립니다.

 

이후 주요군 시설,요충지를 확보하고 바로 경북공으로 들어섭니다.

 

여기서 단종에게 김종서가 안평대군과 짜고 역모를 획책했다고 보고했으며

 

단종의 명을 빙자삼아 조정대신들을 모두 블러들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살생부에 적힌 자들을 전부 척살하니 이것이

 

1453년에 벌어진 계유정난입니다.

 

엄연한 쿠데타이지만 성공한 쿠데타이기에 수양대군은 이후 단종으로부터 강제로 선위를 

 

양위받아 왕이 되니 이것이 조선 4대왕 세조입니다.

 

참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는것이 잘 보여주는것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쿠데타가 실패했으면 우리는 수양대군의 난이라고 쿠데타 일으키다 실패한

 

반역자로 배웠을텐데  성공한 쿠데타가 되니 조선 4대왕 세조로서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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